케이한 전기철도
京阪電気鉄道 / Keihan Electric Railway
1. 개요
일본의 철도 회사. 16개 대형 사철 중 하나이다. 약칭은 케이한.
사철들 작명센스가 다 그렇듯 이름은 교토(京都)의 京와 오사카(大阪)의 阪를 한 글자씩 따서 붙인 것. 한국식 한자어로는 '경판'이라고 읽힌다. 케이한 본선과 자잘한 몇 개의 지선을 영업노선으로 가지고 있으며, 총 영업운행 거리는 91.1km.
지금은 케이한 본선과 지선들만이 남아있지만 사실 2차 세계 대전 이전에는 공격적인 확장 정책으로 유명했던 회사이다. 한때 나라 전기철도, 한와 전기철도등의 사철과 관서 일대의 여러 전기회사까지 영향력을 뻗치던 시절도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그 확장정책이 독이 되어 불황 당시 심각한 타격을 받기도 했다. 당시에는 '서쪽으로는 히메지, 동쪽으로는 나고야' 라고 외칠 정도로 의욕적인 확장 정책을 펼쳤지만 결과적으로 현재 그 꿈에 가장 가까운 회사는 케이한이 아닌 '''다른 회사'''.[1]
2. 역사
간사이 지방의 다른 회사들이 우메다역(오사카역)아니면 난바역에 터미널을 두고 있는 데 반해 이 회사는 혼자 요도야바시역에 터미널을 두고 있는데 여기에는 곡절이 있다.
'''1. 우메다역 진출 실패'''
1910년 개업을 시작한 케이한은 시영전철 이외에는 중심부에 두지 않겠다는 오사카시의 방침에 밀려 당초의 코라이바시[2] 보다 외곽에 위치한 텐마바시역을 오사카 측의 터미널역으로 삼게 된다. 이후 케이한에서는 한큐가 고베 본선을 부설해 한신과의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는 것을 보고, 한큐보다 먼저 신케이한선[3] 을 건설하여 우메다를 터미널로 삼을 계획이었으나, 이 역시 오사카시의 반대로 우메다에서 떨어진 텐진바시[4] 에 터미널을 두었다. 이후, 케이한은 현재의 케이한 본선과 신케이한선을 연결하여 최종적으로 우메다를 터미널역으로 세울 계획을 구상하고 있었고[5] , 이를 위해 신케이한선의 아와지역에서 분기해 쥬소역까지 가는 쥬소 지선을 건설하였으나 오사카시 측의 반대는 여전했고, 설상가상으로 당시 닥쳐온 대공황의 여파를 제대로 얻어맞아 경영이 위태로운 상황까지 몰리게 되어 사실상 우메다 진출은 좌절된다.
'''2. 나고야행 노선 부설 실패'''
앞서 말했듯이 케이한은 '서쪽으로는 히메지, 동쪽으로는 나고야'를 외치며 적극적인 확장정책을 펼쳤는데, 그 일환으로 자회사를 설립해 나고야로 가는 노선을 부설하려 하였다. 그러나 정부에서는 도카이도 본선과 중복을 우려해 허가를 거절하다가 허가를 받아준다. 그러나 허가를 받은 지 4달 만에 세계 대공황이 닥쳐오며, 모회사인 케이한의 주식이 폭락하며, 해당 자회사 역시 '''파산했다.'''
'''3. 한와 전기철도 매각'''
이 외에도 잘 굴러가던 멀쩡한 노선을 둘이나 눈뜨고 빼앗긴 적도 있었다. 하나는 1920년대 중후반에 공격적인 확장정책의 일환으로 자회사 형태로 부설한 한와선으로, 이는 장래 국가에 헌납한다는 조건으로 국철이 요구한 조건에 맞게끔 부설한 것이었다. 하지만 얼마 못 가 대공황이 들이닥치면서 회사의 경영실적 악화로 인해 케이한은 한와 전기철도에서 손을 떼게 되고, 경쟁사였던 난카이가 한와선을 집어먹게 된다. 그러나 이마저도 1944년에 국철이 전시체제를 이유로 다시 난카이로부터 한와선을 강탈했고 패전 이후에는 국철이 과거의 설립허가조건을 운운하며 한와선을 내어주지 않으면서 케이한은 두 번 다시는 이 구간에 발을 들일 수 없게 되었다.
'''4. 신케이한선 강탈'''
게다가 2차 대전 말기, 국가의 사철 통합 정책에 따라 한큐 전철과 통합했다가, 종전 후 분리되었는데, 이 과정에서 선형이 비교적 좋은 편이라 고속 운행이 가능한 자사의 신케이한선을 한큐에 강탈당하고 만다. 언론에서는 시설 운용상의 이유라고 발표했지만, 실상은 우세한 임원진 수를 바탕으로 한큐가 강제로 빼앗았다는 설이 가장 유력하다. 한큐는 케이한으로부터 강탈한 신케이한선을 교토 본선이라고 이름짓고 남부럽지 않게 잘 운용하게 되고, 반대로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케이한은 한큐와 JR(당시에는 국철) 중 속도 면에서 가장 경쟁력이 떨어지는 노선으로 전락해 버리고 만다. 비록 우리와 같은 외국인 입장에서는 볼거리가 많은 노선이라고 해서 타볼 만하다고 이야기하지만 통근객 입장에선 그런 것 따위 없다.[6]
'''5. 나라 전기철도 매각'''
추가로 앞의 두 노선처럼 눈뜨고 빼앗겼다고 말할 정도까진 아니지만 힘싸움에 밀려 노선을 잃어버린 경우도 있었다. 오늘날 킨테츠 교토선의 전신인 나라 전기철도는 킨테츠의 전신 오사카 전기궤도와 케이한이 합작해서 만든 노선으로[7] 개업 당시에는 서로 같은 비율의 주식을 보유하는 형태였고 상호직결운행도 행해졌지만 전쟁 종결 이후 양사의 대립이 심해지면서 이 노선에 대한 소유권을 두고 힘싸움을 벌였다. 그러나 케이한이 요도야바시 진출에 집중하던 타이밍을 노려 킨테츠가 대규모로 주식을 매입해온 탓에 결국 변변한 대항도 하지 못한 채 이 노선에 대한 영향력을 상실하고 말았다.
'''6. 오사카 도심에 진출했지만...'''
온갖 파란만장한 일들을 겪은 끝에 결국 1963년에 이르러서야 그토록 반대하던 오사카시의 허가를 받아내 요도야바시까지 노선을 연장하며 오랜 염원이었던 오사카 중심부에 진출하게 되지만, 기껏 힘들게 오사카 중심부에 터미널역을 지어 놓았더니 정작 여전히 환승을 통해 '''우메다로 가는 것이 가능한''' 쿄바시역의 이용객이 훨씬 많았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8]
'''7. 나카노시마선의 실패'''
우메다에 진출하지 못했던 케이한은, 오사카 시의 나카노시마 재개발 계획에 호응하여 나카노시마선을 부설한다. 하지만, 경기 침체로 인한 나카노시마 재개발의 부진으로, 나카노시마선은 예측 수요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처참한 수요를 기록하고 있다(...).[9][10]
2.1. 1980년 탈선 사고
京阪電気鉄道置(き)石脱線事故
1980년 2월 20일 20시 59분경, 히라카타시역 - 고텐야마역 구간에서 '''중학생 5명이 선로에 설치한 함정[11] 때문에 5000계 열차가 탈선하여 선두차는 선로 옆 주택을 뚫었고 2번째 차량은 전복된 사고'''가 발생한 바 있다. 해당 열차는 요도야바시 발 산조 행 '''급행'''으로, 7량 편성에 약 400명의 승객 중 104명이 부상당하고, 선두차인 5504호는 폐차되는 큰 인명 및 물적 피해가 발생했다.
가해자인 중학생 5명은 당연히 케이한 전철에게 바로 소송 크리를 먹었고, 이 중 4명은 '''각자 840만 엔을 배상[12] '''하라는 판결을 받았다. 3명은 일찌감치 케이한에 손해배상금을 지불했으나, 나머지 1명은 부모가 "우리 애는 서클에는 가담했지만 사고랑은 관계 없어요!"라고 박박 우기다가 '''1987년'''에 최고재판소에서 똑같이 4인과 같은 840만 엔을 배상하라는 판결을 받았다. 참고로 해당 사고에 의한 피해액은 약 4억엔이 넘어갔고 이들 가해자들에게서 받은 4200만엔 이외의 비용은 전부 보험으로 처리했다고 한다.
이 사고로 5504호는 폐차되었다. 다만, 1980년 12월에 같은 차호의 선두차가 대체신조되어 폐차분이 대체되어 운영되게 되었다. 참고로 해당 사건을 계기로 케이한을 위시한 각 철도회사들은 선로 주변에다가 침입 방지용 펜스를 설치하고,선두차에는 배장기를 설치해 이러한 사건이 발생하지 않도록 했다.
3. 특징
3.1. 참신한 시도
다른 회사에 비해 좋게 말해 참신하고, 나쁘게 말해 희한한 시도를 잘 하는 회사로, 가장 대표적인 것이 테레비카. 옛날에는 전자기기가 없었으니 열차 안에서 딱히 뭐 할 일이 있었겠는가. 그때 나온 발상이 "열차 안에 TV를 설치하면 어떨까"라는 것으로, 특급열차 중 1량에 TV를 설치한 객차를 무려 '''1954년'''부터 굴리고 있었다.[13] 요즘은 지하철 안에서도 다들 핸드폰으로 원세그(=DMB)보고, 닌텐도 DS 들고 다니고 해서, 결국 2013년 3월 31일을 마지막으로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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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외에 현재 일본에서 2층 열차를 가장 많이 돌리는 철도회사이기도 하다. 위의 사진을 보면 중간에 2층 열차가 보인다. 이 2층열차의 경우, 윗층에 타면 먼 곳까지 볼 수 있는 전망을 제공하며, 아랫쪽에 타면 눈높이가 정확히 역 플랫폼 높이이기 때문에, 역에 정차했을 때 시선 잘못두면 X태로 몰리기 딱 좋은 환경이 되니 주의하자. 8000계 4번칸이 이에 해당한다. 위의 사진과 같은 식.
발차 멜로디에서도 놀라운 시도를 하여 본선의 특급열차가 정차하는 역의 발차 멜로디를 퓨전재즈 그룹 카시오페아의 전 키보디스트(이며 엄청난 철도 매니아인) 무카이야 미노루(向谷実)가 만들었는데, 각각의 역의 발차 멜로디를 죽 이어 놓고 들어 보면 한 곡이 된다고 한다. 케이한 이외에 도쿄메트로 도자이선도 이 작가가 작곡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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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6월에는 나카노시마역에서 플랫폼에 열차를 세워 놓고 이걸 술집 분위기로 개조해 전철역 이자카야 열차 행사를 한 적이 있다. 보도자료
2017년 8월 20일부터 8000계의 6호차에 한해 프리미엄카라는 유료 좌석을 판매하는데 이게 그린샤 뺨치는 수준이다! 요도야바시역에서 기온시조역까지 단돈 500엔[14] 에 탈 수 있는데 2+1배열에 전 좌석 콘센트가 달려있어 오사카-교토 간의 경쟁을 가속화 할 전망이다. 물론 4호차의 2층 차량은 계속 추가운임없이 이용할 수 있다.
3.2. 오덕의 성지
'''교토 애니메이션'''의 사옥이 이 노선 근방에 있어서, 러키☆스타 OVA에 딸려있는 러키채널 실사판을 보다보면 콘노 히로미와 시라이시 미노루 뒤에서 가끔 초록색 전철이 지나다니는 것이 보이는데, 그게 이 케이한 소속 열차들이다. 오츠선, 특히 이시야마사카모토선의 전동차에는 아예 케이온!과 중2병이라도 사랑이 하고 싶어!의 랩핑 차량을 굴리고 있다.
교토 후시미구를 배경으로 전개되는 만화인 이나리, 콩콩, 사랑의 첫걸음의 TVA화를 맞아 콜라보레이션 이벤트를 진행중이기도 하다. 내용은 캐릭터들의 이름이 유래한 역들에 개별 캐릭터의 등신대 패널이 설치되었으며 작품의 이미지를 이용한 원데이 프리 티켓 발매, 그리고 각 전차에 주요 캐릭터의 이미지를 헤드 마크로 달고 운행하는 것 등이다.
2017년에는 울려라! 유포니엄와의 콜라보레이션으로 스탬프랠리, 캐릭터들을 이용한 원데이티켓 발매, 등신대 설치, 래핑열차 등의 이벤트를 진행한다.#
치하야후루의 중요 배경인 오우미 신궁을 지나가는 이시야마사카모토선에는 치하야후루 랩핑 차량도 운행한다.
3.3. 기타
관광객의 입장에서는 스룻토 간사이 패스를 이용하여 오사카에서 교토로 갈 때 한큐전철과 함께 많이 이용하게 되는 노선이다.
2014년 4월부터 역번호를 도입했는데, 이니셜은 KH이며 케이한선 계열에만 도입하였고 오츠선 계열에는 도입하지 않았다가 현재는 오츠선에도 도입되었다. 오츠선의 이니셜은 OT.
케이한 광고에 나오는 광고모델은 '''오케이한(おけいはん)'''이라고 부르며, 현재 오케이한은 '''산조 케이코'''[15] 라고 부른다. '''京阪のる人、おけいはん'''이 캐치프레이즈. 케이한에선 오케이한을 자사의 얼굴마담으로 내세우며, 각종 행사 및 축제에 오케이한을 적극적으로 내보낸다. 오케이한 전용 사이트도 있다.
간사이권의 5대 대형 사철(한큐, 한신, 난카이, 긴테츠, 케이한) 중에 유일하게 '''프로야구단'''을 가져보지 않았던 회사이다. 물론 지금은 한신 타이거스를 빼고는 모두 매각되거나 해체되었지만.[16]
철덕으로 잘 알려진 오사카계 오와라이게닌 나카가와 레이지(中川礼二)가 가장 좋아하는 철도라고 한다. 방송 흉내내기가 특기라고.
4. 노선 목록
전체 노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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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주요 터미널역
6. 타사 노선 직결운행
7. 버스 사업
- 케이한 버스 (교토부, 시가현, 고속버스, 전세버스)
- 케이한 교토교통 (교토부)
- 케이한 우지교통 (시가현)
- 코작교통 (시가현)
- 교토버스 (교토부, 시가현)
8. 차량
9. 철도무스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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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름 : 이시야마 토모카石山ともか (이름의 유래는 이시야마사카모토선의 이시야마데라역과 사카모토역의 카모토를 뒤집은 것)
- 이시야마사카모토선에서 운전사로 근무하고 있다.
- 조용한 성격이지만 대단한 노력가로, 모든 일에서 항상 1등을 목표로 노력한다.
- 애니메이션과 코미케를 좋아한다. 랩핑열차가 운행되면 원작을 알아내서 거기에 푹 빠지는 일도 있다고.
- 좋아하는 음식은 어묵 최근에는 자신이 좋아하는 빵집에서 만들어 파는 바움쿠헨에 푹 빠져있다. 멀리 사는 친구에게 추천할 정도.
- 철도무스메 10주년 기념 인기투표에서 2위를 했다.
10. 관련 문서
[1] 한신난바선과의 직통으로 현재는 서쪽으로 고베까지 왔다.[2] 현재의 키타하마역 인근. 참고로 코라이바시를 우리식으로 읽으면 고려교(高麗橋)로 이 이름의 유래는 이곳 인근에 우리나라 사신이 머물던 객관이 있었다는 설, 대 조선무역의 거점이었다는 설 등이 있다.[3] 이후의 한큐 교토 본선[4] 현재의 텐진바시스지로쿠초메역.[5] 지금의 HEP FIVE 부지가 바로 당시 케이한이 터미널로 삼기 위해 매입한 땅이었다.[6] 다만 케이한은 JR 교토선과 한큐 교토 본선과는 다르게 네야가와시, 코리엔, 히라카타시, 쿠즈하 등을 거쳐가기에 이 지역에서 오사카로의 통근객이 많다. 그리고 케이한은 요도야바시역, 키타하마역, 텐마바시역, 쿄바시역, 세키메역에서 지하철 환승이 가능하지만, 한큐는 지하철 환승이 오사카우메다역, 미나미카타역(미도스지선 니시나카지마미나미가타역)밖에 없어서 한큐 교토선보다 총 승객은 더 많다.[7] 이 노선 역시 원래는 케이한이 나라로 가는 노선에 눈독을 들이고 혼자 만들려 했으나 상황이 여의치 않아 결국 킨테츠와 협력하여 만들게 되었던 노선이었다.[8] 2014년 기준 요도야바시역 107,763명, 쿄바시역 177,292명. 출처 http://www.geocities.jp/l00az/22.htm[9] 당초 예측 일평균 7만 2천명, 현재 수요는 일평균 3만명에 조금 못 미치는 수준에서 정체되고 있다.[10] 게다가 비슷한 시기에 개통한 한신난바선이 일평균 9만 5천명에 달하는 수요를 보여주며 성공한 것과 대비되어 비교되기까지 한다(...)[11] 케이블과 U자형으로 된 콘크리트 물체를 '''선로 위에다 올려놓았다!'''[12] 피해 금액의 10분의 1 정도였으나, '''이들은 미성년자였기 때문에''' 케이한이 여기서 끝낸 것.[13] TV가 희귀한 시대였기에 대인기였다고.[14] 승차권은 별도로 구매해야 한다. 만약 요도야바시-데마치야나기 구간을 이용할 경우 승차권 410엔+ 특급권 500엔= 910엔이 든다.[15] 현재 오케이한은 7대째로 모든 오케이한의 성은 케이한의 주요 역명이며, 이름은 케이코다[16] 한큐의 한큐 브레이브스는 오릭스에게 매각해 오릭스 블루웨이브가 되었고,킨키 일본 철도의 오사카 킨테츠 버팔로즈를 합병해 지금의 오릭스 버팔로즈가 되었다. 난카이의 난카이 호크스는 다이에에게 매각한 뒤 연고지를 후쿠오카로 옮겨 후쿠오카 다이에 호크스가 되었다가 지금은 소프트뱅크에게 매각되어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가 되었다.